내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는 단순히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는 아니야.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어.
잘못했을때 매 보다는 따끔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어.
물론 어릴때 골프채로도 맞아봤지만.. ㅋㅋㅋ
추석날 아버지와 아들 섭이와 아내 넷이서 강화도 할머니댁 근처 저수지를 걷고 있었어.
그때도 억새풀과 갈대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계셨어.
많은 사람들이 억새풀과 갈대를 혼동한다며 그 차이점을 알려주셨지. ㅋㅋ
그리고 분명 작년에는 바짝 말라있던 저수지에 물이 다시 차고
물고기들은 어디서 다시 생겼는지도 알려주셨어.
아버지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자연에도 엄청 지식이 풍부하셔.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으셨다면 자연과 함께하셨을거 같아..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수지 한곳에 멈춰서서 이런 얘길 해주셨어.
지금 나에게 너무나 절실했던 이야기였지..
아버지가 경제학공부를 할 당시 재밌게도
행복지수에 대해서도 경제학과에서 가르치더라고...
행복이란 우리가 소유한것을 욕망으로 나눈것이라고 하셨어.
더 많이 소유하고 욕망이 적을 수록 행복한것 이고,
더 적게 소유하더라도 욕망이 그 보다 적다면 또 한 행복이라고.
너무 아둥바둥 살아가지 말라고 하셨지.
마음 여유롭게 먹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라고.
적당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달려가라.
하지만 그 목표를 위해 너무 욕심을 부리다 보면 불행해 질 수 있다.
너무 무리한 큰 목표도 불행해 질 수 있다..
뭐 이런 이야기 였어.
정말 지금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이야기 였거든...
아버지도 나와 같은 때가 있었고,
아버지는 지금 이 이야기를 해줘야 할 적당한 때라고 느끼셨을꺼야.
정말 현명하신 분이시지.
이 이야기를 2-3년전에 들었다고 해도 난 전혀 공감못했을거야.
아마 그냥 잊어 버렸겠지..
적확히 어떤 이야기를 정확히 어떨때 해야할 지 알고 계셨어.
마치 내 인생을 도표로 그려두시고 할 이야기들을 표로 만들어 놓으신것 같아.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는 이거야.
아무튼...
결혼을 하면 남자는 부담감이 조금 생겨.
절대 나쁜건 아니지만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책임감도 많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욕망이 커지거든.
그리고 그 지나친 욕망, 욕심앞에서 한없이 작은 나를 발견할때면 자괴감에 빠지기도해.
나보다 더 가진 삶을 보며 '질투'하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경제학을 공부하실 때 들었던 내용을 찾았어.
그래서 주위사람들과 공유하려고해.
아래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좋겠어.
나도 더 행복해 지고 싶어.
나, 내 가족, 내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다시 건강한 사람으로 돌아오고 싶어.
더 건강한 신동열.
더 건강한 바스코.
-GUERRILLA MUZIK-
◇행복지수 공식◇
우리가 살면서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보다 풍족한 생활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풍족한 생활을 원하는 것일까? 만약 거지가 백만장자보다
더 행복하다면,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대상은 거지일까, 백만장자일까?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Paul A. Samuelson)은
다음과 같이 간단한 방정식으로 행복을 정의했다.
행복(幸福) = 소유(所有) / 욕망(慾望)
즉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가
소유와 욕망인 것이며, 욕망이 정해져 있을 경우
소유가 커질수록 행복해 진다. 반대로 소유가 정해져 있다면 욕망이 적을수록 행복해 진다.
다시 말해 소유가 클수록, 욕망이 적을수록 행복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복의
최대화는 곧 소유의 최대화이며, 소유의 최대화는 수입의 최대화와 같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소유할 수 있는 재물에는 한계가 있다.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수입도 풍족한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는 욕망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소유는 유한(有限)하고 욕망은 무한(無限)하기에 행복(幸福)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眞正)한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지금의 삶에 만족(滿足)하고, 자기(自己)생(生)을 충분(充分)히 누리며,
현재(現在)를 소중(所重)히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결국 행복지수의 궁극적(窮極的)인 수치(數値)는
소유(所有)와 욕망(慾望)의 줄타기를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餘裕)에서 결정(決定)되는 것이다.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
모차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