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일 화요일

행복지수 공식.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는 단순히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는 아니야.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어.
잘못했을때 매 보다는 따끔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어.
물론 어릴때 골프채로도 맞아봤지만.. ㅋㅋㅋ

추석날 아버지와 아들 섭이와 아내 넷이서 강화도 할머니댁 근처 저수지를 걷고 있었어.
그때도 억새풀과 갈대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계셨어.
많은 사람들이 억새풀과 갈대를 혼동한다며 그 차이점을 알려주셨지. ㅋㅋ
그리고 분명 작년에는 바짝 말라있던 저수지에 물이 다시 차고 
물고기들은 어디서 다시 생겼는지도 알려주셨어.

아버지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자연에도 엄청 지식이 풍부하셔.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으셨다면 자연과 함께하셨을거 같아..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수지 한곳에 멈춰서서 이런 얘길 해주셨어.
지금 나에게 너무나 절실했던 이야기였지..

아버지가 경제학공부를 할 당시 재밌게도 
행복지수에 대해서도 경제학과에서 가르치더라고...

행복이란 우리가 소유한것을 욕망으로 나눈것이라고 하셨어.
더 많이 소유하고 욕망이 적을 수록 행복한것 이고,
더 적게 소유하더라도 욕망이 그 보다 적다면 또 한 행복이라고.

너무 아둥바둥 살아가지 말라고 하셨지.
마음 여유롭게 먹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라고.
적당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달려가라.
하지만 그 목표를 위해 너무 욕심을 부리다 보면 불행해 질 수 있다.
너무 무리한 큰 목표도 불행해 질 수 있다..
뭐 이런 이야기 였어.

정말 지금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이야기 였거든...
아버지도 나와 같은 때가 있었고, 
아버지는 지금 이 이야기를 해줘야 할 적당한 때라고 느끼셨을꺼야.
정말 현명하신 분이시지. 
이 이야기를 2-3년전에 들었다고 해도 난 전혀 공감못했을거야.
아마 그냥 잊어 버렸겠지..
적확히 어떤 이야기를 정확히 어떨때 해야할 지 알고 계셨어.
마치 내 인생을 도표로 그려두시고 할 이야기들을 표로 만들어 놓으신것 같아.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는 이거야.
아무튼...

결혼을 하면 남자는 부담감이 조금 생겨.
절대 나쁜건 아니지만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책임감도 많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욕망이 커지거든.
그리고 그 지나친 욕망, 욕심앞에서 한없이 작은 나를 발견할때면 자괴감에 빠지기도해.
나보다 더 가진 삶을 보며 '질투'하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경제학을 공부하실 때 들었던 내용을 찾았어.
그래서 주위사람들과 공유하려고해.
아래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좋겠어.

나도 더 행복해 지고 싶어.
나, 내 가족, 내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다시 건강한 사람으로 돌아오고 싶어.
더 건강한 신동열.
더 건강한 바스코.

-GUERRILLA MUZIK-


행복지수 공식◇

우리가 살면서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보다 풍족한 생활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풍족한 생활을 원하는 것일까? 만약 거지가 백만장자보다
더 행복하다면,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대상은 거지일까, 백만장자일까?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Paul A. Samuelson)은
다음과 같이 간단한 방정식으로 행복을 정의했다.

행복(幸福) = 소유(所有) / 욕망(慾望)

즉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가
소유와 욕망인 것이며, 욕망이 정해져 있을 경우
소유가 커질수록 행복해 진다. 반대로 소유가 정해져 있다면 욕망이 적을수록 행복해 진다.
다시 말해 소유가 클수록, 욕망이 적을수록 행복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복의
최대화는 곧 소유의 최대화이며, 소유의 최대화는 수입의 최대화와 같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소유할 수 있는 재물에는 한계가 있다.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수입도 풍족한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는 욕망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소유는 유한(有限)하고 욕망은 무한(無限)하기에 행복(幸福)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眞正)한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지금의 삶에 만족(滿足)하고, 자기(自己)생(生)을 충분(充分)히 누리며,
현재(現在)를 소중(所重)히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결국 행복지수의 궁극적(窮極的)인 수치(數値)는
소유(所有)와 욕망(慾望)의 줄타기를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餘裕)에서 결정(決定)되는 것이다.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
모차오' 중에서-

2012년 9월 28일 금요일

즐거운 한가위!

모두 즐거운 추석!
잘 보내고 조만간 봅시다!

요즘 작업때문에 바빠서 블로그를 자주 못했지만..
자주 올리도록 노력할께.

재밌는게 좀 있을꺼야. 내 앨범은 아니지만..
내가 총괄해서 제작하는 재밌는 프로젝트가 나올거야.
내 앨범도 물론 준비 중이고.

바쁘게 열심히 해서 재밌는걸 빨리 들고 나올꼐.

좀만 기다려!

즐추!
ONE!

언더그라운드 (2) - 멘토

언더그라운드에 데뷔하고
신촌 라이브클럽에서 6개월도 활동했는데, 클럽이 문을 닫아 버렸어.
장사가 안됐나봐. 이유가 어찌됬든지 나머지 뮤지션들은 갈 곳을 잃은거야..
그때 당시 Master Plan이라는 언더그라운드 공연장이 있었는데
그곳은 다들 아시다 시피 힙합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었고 아무나 무대에 설 수 없는 곳이었어.
실력이 뛰어난 뮤지션만 슬스 있었지..
그때 당시 내 팀은 데뷔한지 6개월 밖에 안됐고 실력도 형편 없었어.
그래서 Master Plan은 꿈도 못꾸고 다른 클럽을 알아봤어.

그때 찾은 클럽이 '슬러거'라는 클럽이었어.
홍대에 수노래방 사거리 근처에 작은 파출소 있지?
거기 바로 옆에 지하 클럽이 슬러거자리였어. 지금은 없어 졌지만..
아무튼 슬러거는 힙합공연장은 아니었고 작은 락,밴드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자리였고,
장사가 잘 안됐는지 힙합공연도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거기서 오디션을 보고 활동을 시작했지.

그때 당시 슬러거에 계시던 뮤지션들이 현재 스나이퍼형, 배치기, 그외 많은 스나이퍼 사운드 식구들이었어. 나도 있었고, 씨클로라는 팀, 대학연합등 많은 팀들이 있었어.
MC.K, 레드페이스라는 분들도 계셨고!

그때 대기실이 기억나.
들어가면 뮤지션들의 반가운 얼굴들과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경쟁심.
무대위에 올라가기 전에 그 흥분!
형들도 계셨고 동생들도 있었고, 공연이 끝나면 다같이 술을 마시러가곤 했어.
난 좀 술자리에 자주 안나갔던걸로 기억해.

근데 스나이퍼형이랑은 술을 자주 마셨던걸로 기억해.
스나이퍼형의 방배동 옥탑방작업실도 자주 갔었고.
그때 나에게 스나이퍼형은 신처럼 느껴졌어. 정말 최고였거든.
라이브도 최고였고 가사도 멘트도.. 그 카리스마가 후덜덜했었어..
형에게 많은 걸 배웠었어.

술에 만취하면 동생들을 자주 때리고 했어. 근데 그게 참 재밌었던게 상대를 좋아하는 표현을 그렇게 하셨거든. ㅋㅋ

형 좋아해? 그럼 한대 쳐봐!
에이.. 형을 어떻게 때려요 동생이..
마지못해 때리고나면 형은 나를 좋아하는 만큼 한대 쳤던걸로 기억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술먹고 홍대전철역에서 신문지 덮고 잔적도 있었어.ㅋㅋㅋ
굉장히 다이나믹한 시기였던거 같아..

음... 아무튼 난 초창기에 스나이퍼형이라는 굉장히 멋진 멘토를 만났었어.
그게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데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해.

요즘은 스나이퍼형과 그렇게 자주 보지않고 연락을 자주 하지 않지만.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어.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생긴거 같아. 거리감이라 표현하기에는 뭐하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난 더 많은걸 배우고 싶었고, 스나이퍼형은 자연스럽게 더 다른 동생들이 더 잘 맞았을 수도 있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
만약 계속 서로 잘 지내고 있었다면 아마 지금 난 스나이퍼 사운드에 있었을 수 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해.

언더그라운드에 데뷔해서 공연을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멘토를 만나는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슬러거 클럽은 내게 스나이퍼형을 만나게 해준 곳이야.
내가 1년넘게 몸담아 왔던 곳이었고.
신촌 라이브클럽, 홍대 슬러서 클럽. 이 두곳에서 한 2년동안 매주 공연만 했어.
매주. 2년동안 공연만 했어..

페이는 없지만 완전 다이나믹했었어.
아... 저때로 다시 돌아가면 재밌을거 같아..


2012년 9월 8일 토요일

이게 나의 불금..

아내랑 아들은 방에서 자고..
재다니엘과 콜라 그리고 도리토스!
한 주 수고했다~ 주말은 푹 쉬어야지..



추적...

와... 근데...
이거 블로그 들어온 사람이 어느국가에서 접속했는지랑,
핸드폰인지 컴퓨터인지도 알수 있는데,
안드로이드기반인지 아이폰인지, 블랙베리인지 다 알 수 있어..
좀 섬뜩하지 않어??

저정도 알수있으면... 알려고 맘먹으면 더 알 수 있지않을까...

아님 말고..


언더그라운드 (1) 데뷔 : 라이브 클럽


언더그라운드 씬 데뷔.

라이브클럽
2000년. 처음 신촌의 '라이브클럽' 무대에서 데뷔를 했던때가 기억나.
이미 라이브클럽의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분들 앞에서 우리가 준비해간 오디션용 MR을 틀고 오디션을 보던 때가. ㅋㅋㅋ

아.. 라이브클럽 이름이 라이브클럽이였어. ㅋㅋㅋ

당시 세종대학 재학 중이던 나와 다른 동기, 건국대생 2명 해서 4명이서 팀을 만들고,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허접한 자체 제작한 미디음악3곡을 오디션용으로 만들어서 연습을 했어.
오디션은 한번에 붙었지만 결코 우리가 잘해서 붙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금 생각하면 사장도 어차피 클럽에 공연할 팀도 부족하고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 
공연 라인업이라도 늘리자 식으로 합격했던것 같아. 
물론 사장이 따로 우리에게 페이를 주지 않아도 됐으니 사장은 고민할 것도 없었고.
2000년 당시 신촌 라이브클럽에 관객은 2-3명. 많으면 5-10명.
요즘 홍대 언더그라운드 씬에 비하면 참...

요즘 어린 친구들 좋은줄 알라고~ 무슨 작은공연해도 적어도 50명이상은 와주시잖아!
그땐 티켓가격도 5천원에 음료수까지 드렸었어. 
그래도 10명이 안됬고 ㅋㅋㅋ

이때 활동 했던 언더그라운드 힙합 팀들이 많이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씨클로, 대학연합팀 등이 기억에 나..

씨클로는 실력과 멋진 외모로 인기가 좀 있었던 팀으로 기억해...
근데 뭐 인기 있었다고 해봤자 관객이 2-3명이라....

아무튼 난 저곳에서 데뷔했어.
랩가사를 솔직히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말 그냥 듣던 음악을 흉내내면서...
그리고 그냥 무대에 올랐어. 뭐 어떻게 손발을 써야하는지도 모르고, 발성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진짜. 그냥 재밌기는 했었어.
지금 보다 훨씬 재미는 있었어..
그냥 모두에게 정답은 없었거든 그땐. ㅋㅋ 

M2메거진과 인터뷰

M2메거진과 인터뷰

인터뷰는 아래 사이트에 가시면 추가로 더 보실 수 있어요!
http://magazinem2.com/
http://www.mainblock.co.kr/

2012년 9월 6일 목요일

Woodkid - Run Boy Run

Woodkid - Run Boy Run

달려 소년아~ 달려~
ㅋㅋㅋ
괴물들이 소년을 공격하러 가는거 같아?
카타르시스를 느끼시길..!!!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Oriental Express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완전 좋다. 한국 퓨젼 째즈.

2012년 9월 5일 수요일

일할때 가장 큰 행복.

어떤 프로젝트 관련해서 회의를 갔는데,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향도 같고, 바라보는 시각도 같고,
서로 공감하고 많은 재밌는 생각이 나올때.
혹은 내가 알지 못했던것들을 알아 가거나, 상대방이 나의 의견을 듣고 무릎을 칠때.

그때가 가장 행복해.
일이 진행이 되서 결과물이 나오면 더 할거 없이 행복하겠지만.
지금 이 자체로도 행복하고 즐거워.
I Love My Work.

2012년 9월 3일 월요일

Recording Tools


Macbook Pro with Protools10
Fireface800
Distressor el8-x
Neve 1272
AKG the Tube
이렇게 셋트로 들고다니면서 어디서든 녹음할 수 있게 했는데 너무 무거운게 함정..

소형차 가격보다 비싼 셋팅이지만
이것들 보다 내 몸과 목상태, 내 멘탈상태가 녹음결과물에 가장 큰 요인인것 같아.

지금 녹음하다가 너무 어지러워서 쉬고 있어.
정말 너무 어지러워. 호흡도 잘안되.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하다가 쓰러질뻔 한게 몇번인지 모르겠어..

요즘 내 몸과 마음상태가 정말 최악인거 같아..
응원해줘.. 쓰러지지않게.

Guerrilla Muzik
Independent Records


Baby mama

Yup~
She's your mama~

2012년 9월 2일 일요일

Jiggy Fellaz의 시작

Jiggy Fellaz



더이상 나는 지기펠라즈의 멤버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름을 들으면 익숙하다.
내 젊음의 큰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기펠라즈.
그 시작을 추억해보고 싶다.

2004-5년쯤? 이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부산 클럽에서 공연을 했던걸로 기억해. 
그때 마스터플랜 식구들이 전부 출동하는 공연 이었어.
그곳이 지기펠라즈의 시작이었던 클럽 JG라는 곳이었어,
클럽JG의 명칭은 '지기 게런티드'
Jiggy - 즐거움, 노는거? 정도이고
Guaranteed - 보장된.
즉, 즐거움이 보장된 이란 뜻의 클럽이었어.
그 클럽의 사장님이 '장고'라는 분이셨어.


원래는 '지기게런티드'라는 크루가 있었어.
장고형을 중심으로 지훈이, 현용이, 그외 다른 부산 지역 친구들.
랩을 하는 친구들은 아니었고, 클럽 JG를 중심으로 친한 친구들 이었어.

부산에 처음 도착을하니 머리를 빡빡밀고 수염을 기른 두 사람이 마스터플랜 식구들을 데리러 나왔었어. 서부에서 유행하던 로우라이더 자전거를 끌고.
위, 아래 전부 흰색 디키즈로 맞춰입고서.
난 그냥 와 여기가 한국이 맞어? 여기 무슨 LA같아! 라고 느꼈어.
그 두사람이 바로 장고형, 


그리고 친척동생 지훈이 였어.
둘다 정말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썻고 난 대화를 할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알아 먹었었어.
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부산 클럽에서 마스터플랜 공연이 다 끝나고 서울에 올라갈때 
장고형이 공연이 맘에 들었다고 다음에 혼자와서 따로 한번 공연하자고 하셨어.
이후 한달정도 되서인가 약속대로 나만 따로 부산에서 공연을 했어.
그리고 엄청 가까워 지기 시작했어.
나도 부산이라는 곳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장고형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거든.

한번은 이런적도 있어. 내가 '와.. 광안대교 정말 멋지네요 형.' 이라고 말하니
'차에 타라.' 하더니 광안대교를 향해 가셨어. 
그리고 광안대교 한 중간에 차를 멈춰 세우더니 광안대교 위에서 사진을 찍어 주셨지.
이건 완전 불법행위였어 ㅋㅋㅋㅋ
실제로 경찰이 지나가다가 우리의 행동을 보고 멈춰 섰어.
도대체 모두 쌩쌩 달리는 도로위에 차를 맘데로 세워버리고 
사진이나 찍고 있으면 어떻게하냐고.. ㅋㅋㅋ 
근데 장고형이랑 몇마디 나누더니 경찰관이
 "좀만 더 찍고 빨리 이동하세요" 하셨어. ㅋㅋㅋ 
그정도로 장고형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어.

한때는 그런적도 있어.
내가 그냥 부산클럽에 놀러갔었을 때인데 클럽 JG말고 다른 클럽에서 '가리온'형들을 초대 했었어. 그당시 클럽JG는 장사가 좀 잘됐었어. 그래서 혹시나 가리온형들 공연하는 클럽에 피해가 갈까봐.. 자기 클럽에서 공짜로 나눠주던 술도 안나눠줬어 그날은.
그리고 '가리온'공연이 시작될쯤에 그 클럽에 손님이 많이 없단 소식을 듣더니 
갑자기 클럽JG 디제이부스 전원을 내려버리고.
"자 우리 클럽공연 끝났으니 저기 옆 클럽으로 가세요. 지금 가리온 공연한데요" 
하고 가리온형들의 무대를 체웠었어.
그때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그날 가게가 적자가 나더라도 술을 항상 지나칠 정도 꺼내주셨어.
그리고 그 서울 손님을 위해 엄청난 존경을 보여주셨었고..
내 기억에 장고형은 정말 아티스트들을 엄청 존경해 줬었어.
많은 아티스트들도 장고형을 존경하기 시작했던거 같아.

근데 난 한편으로 공연 적자난거 뻔히 알면서도 장고형에게 
좀 지나친 부탁을 하는 뮤지션들을 증오하기 시작했어. 
'저런 눈치없는 새끼들..' 하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술 더 가져와라. 
아니면 술은 여기서 마실꺼 다 마시더니 다른 클럽으로 가서 노는 사람들..
실제로 그런 행동에 내가 너무 화가나서 
DJ Schedule1형, 원썬형에게 뭐라고 했다가 싸움으로 까지 번질뻔 한적이 있었어.
정말 지금 생각하면 동생녀석이 건방지게 형들에게 목소리 높이고 덤벼들었다니..
물론 나중에 형들께도 죄송하다고 말씀은 드렸고.. 
지금은 형들과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좋게 잘 지내고있어.

아무튼 이렇게 장고형을 만나서 친분을 쌓다가 
장고형이 '지기게런티드'라는 크루를 
랩도 하고 문신도하고 디제이, 프로듀서도 있는 음악적인 크루로 만들자고 제안했었어.
난 너무 흥분했었어. 정말 재밌을거 같았거든.

그래서 '지기게런티드'였던 멤버들 그리고 내가 데리고 있던 뮤지션동생들로
부산을 중심으로 '지기펠라즈'라는 이름이 탄생됐었어.

-Jiggy Fellaz 시작-

2012년 9월 1일 토요일

메니져가...

메니져가 옆에서 블로그 업데이트가 더디다고 글좀 쓰라고 압박한다.
아.. 정말 짜증난다.
월급드리고. 4대보험 해드리고.
갈굼을 당하다니...
뭐 이런 존재가 다 있지...

라고 하고 싶지만.
대견한 녀석이다.
머리속에 '인디펜던트'밖에 없는 녀석.

계속 재밌는것좀 올리라고 한다.
그래서...
이녀석이 똥을 싸는 모습을 찍어둔게 있는데
올려야 겠다.

이 친구를 만나게 된 계기도 이야기 올려야지.

-------

아 방금 정민규실장님의 똥싸는 모습을 업데이트 했었는데,
지가 지웠다.. 아..
정말 순간이었지만.. 그 사진을 보신 분들은 기억에 고이 간직 해주세요..
^-^

이제 정민규 실장과 저는 M2 웹진 사진, 영상 촬영 및 인터뷰 가야지!
사진과 영상 올라오면 공유하겠어!

Guerrilla Muzik.
Independent Records.
ONE!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힙합엘이 토크콘서트 4화 - 바스코 사장과 인디펜던트 편

 
이날 토크콘서트에서 재밌고 심도있는 이야기 많이 나눌꺼야.
정말 진실된 모습을 보여줄꺼고
아직 구체적으로 인터뷰, 대화의 내용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의 부끄러운 부분이 있어도 솔직할거고,
비하인드스토리들도 거침없이 이야기 하겠어!

정말 나 자신에게도, 오신 모든 분들에게도 뜻 깊은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벌써 부터 기대된다!!
 
진짜 나.
Real Talk.
 
Guerrilla Muzik!!
 
아.. 250석이 매진으로 알고 있는데.
예매로 끝날거 같아. 무조건 예매 서둘러서!!!
 
예매와 기타 정보들은 여기서!
 
 
 

이 블로그에서

아까 질문하는 글을 올렸는데..
답글을 달려면 귀찮게 상대방이 로그인을 해야한다. 음.. 좀 번거롭다.
구글에서 하는 서비스라서 구글, 지메일 아이디 있으면 가능은한데..
귀찮게 로그인까지...?
그냥 댓글 안달려도 될거 같다. 나도 질문하지 않고 피드백같은거도 신경 안쓰고.

그냥 꾸준히 글을 올리면 트위터에 함께 링크를 올릴께요.
타고 놀러오세요!
즐겨찾기 하시고 가끔씩 들어와도 좋구요!

그냥 편하게.




GUERRILLA MUZIK 씨리즈

3집 작업 당시 체게바라 평전에 빠져있었고 자연스럽게 
앨범의 컨셉을 'GUERRILLA'로 정하게됐어.


대학생때 친구에게 빌려서 읽고, 졸업 후 직접 책을 구입해서 다시 읽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책은 빌려서 읽는것보다 소장을 하고 읽는게 더 몰입도가 생기더라.
더 나의'것' 같은 느낌이랄까. 자세가 틀리더라고.
불법으로 MP3받아서 음악을 듣는거랑 정액제든 종량제든 돈을 주고 음악을 듣는거랑 자세에 차이가 있듯이 말이야.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가치를 지불하도록해! 
분명 말해두는데 스스로에게도 남는게 있을거야.)

분명 이책은 내가 사회를 바로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끼쳤던것 같아.
내게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그 이야기를 음악으로 푸는데 큰 명분을 심어줬고,
이책을 통해서 리더로서의 자세도 (아직은 미숙하지만..)
어느정도 다듬을 수 있게된 계기였어.

처음 체게바라평전을 접했을때는 등장인물들이나
장소, 명칭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어.
전체적인 큰 흐름을 이해하고 보는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됐던것 같고
전체적인 큰 그림의 이해를 위해서는 'Che'라는 영화가 도움이 됐어.


영화는 Part1, Part2로 나누어져 있고,
활동 당시 굵직 굵직한 중요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심리까지 잘 묘사되있어서 좋았어.
연기들도 훌륭하지만

그리고 체게바라가 혁명을 시작하기전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Motorcycle Diaries'라는 영화를 보면 좋아.
어떻게 의사가 혁명가가 됐을까? 그 배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돼.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가 영화가 끝날때 쯤에는 가슴속에 뭔까 뜨거운게 느껴질꺼야.
꼭 무슨 혁명이니 뭐니 거창한 단어로 설명 되는것이 아니더라도
인간적인 뜨거운 뭔가 말이야.


이 두영화를 통해 전체적인 큰 흐름을 이해하고 다시 체게바라 평전을 읽으니
그의 극적인 삶이 더 가슴에 깊게 와닿았어.

Guerrilla Muzik씨리즈를 조금 더 깊게 즐기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체게바라의 이야기를 어느정도 알고 듣는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Guerrilla Muzik 씨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위해서
체게바라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하는거야.



아무튼!
'GUERRILLA MUZIK'의 시리즈는 체게바라의 정신에서 시작됐고,
크게보면 Independent Records 회사 역시 그의 정신을 기본으로 시작됐어.
하지만 분명한건 내가 Guerrilla Muzik 씨리즈로 전하고자 했던것이
어마 어마한 의미의 '혁명'을 하고자 한건 아니었어.

현재는 그나마 조금 상황이 좋아 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언더그라운드는 소외받고 있는 문화라고 생각이 들었어.

짚고넘어가는데 언더그라운드는 실력이 모자란 친구들이 있는곳이 아니야.
돈이 안되는 음악을 해야만 언더그라운드라는것도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언더그라운드는
큰 자본주의시장의 '흐름'에 편승하지않고,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는 곳이야.
스타일이 리얼힙합이든 일렉힙합이든 뭐든지 상관없이.
실력과 새로운 스타일 혹은 오리지널리티의 수호? 로 승부를 보던 곳이지.

언더의 상황이 요즘은 좀 많이 좋아 지긴했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존재해.
솔까말 언더는 이제 돈 좀 만질 수 있는곳이 됐어.
더 이상 실력만으로 승부하는곳이 아닌것은 확실해. 그게 문제는 아니지.
언더에서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전략과 계산등이 필요한거 같아.
이슈도 중요하고, 캐릭터도 중요해.
그걸 부정하지 않고 문제점이라 생각하지는 않아.

내가 볼때 현재 큰 문제점들은 언더그라운드를 대하는 뮤지션의 태도와 외부의 태도야.
너도 나도 언더에 뛰어들고 메이져로 진출하기 위해 아둥바둥 애쓰고 있는 언더뮤지션.
마치 가수가 되기 위한 등용문 혹은 코스 처럼 느껴지더라고.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보다는 먹힐만한걸 쫒아 가는 자세?
잔머리만 굴리고 있는 느낌이 들어.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거야!
혹은 옛것! 혹은 클래식함, 뿌리를 지키겠어!
이런 자세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졸라 잘 팔릴까?
어떻게 해야 매진시키지?
어떻게 해야 졸라 내가 유명해지고 더 큰바닥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이게 요즘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태도 같아.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뮤지션들이 그래.)

외부의 태도는 어떤지 알어?
어떤 기획사는 연습생을 데리고 미리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하던 프로 아티스트처럼 보이게 하기위해서 언더그라운드에서 먼저 데뷔를 시키는 경우도 봤어.
언더그라운드가 갖는 가치가 뭐냐고?
"실력파" "명예" "순수함"
그런것들을 이제 사업적으로 이용해 먹더라고.

내가 느끼기에 정말 순수하게 열심히 음악을 하던곳이
자본주의시장 논리에 물들고 있는 느낌이야.
"그게 뭐 잘못된건가요?" 라고 한다면..
12년째 이바닥에서 음악을 하는 나의 입장에선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

홈플러스와 재래시장의 관계 같은거야...
더 이상 길게 이야기 하지 않을께.
(이해가 안가면... 멘붕)

결국 Guerrilla Muzik에서 내가 담고 싶었던것들은
그러한 뮤지션들의 태도를 꼬집고
그러한 자본주의시장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것
그런 현실에서 나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것들이었어.
뭐 어마 어마한 '혁명'그런것은 확실히 아니지?

3집은 Vol.1 : Prologue였어.
첫 시작, 인트로성향의 앨범이었고
혁명의 시작? 정도로 받아 들이면 될거 같아.

Vol.2 : 전쟁(아직 제목은 미정)
크게 언더그라운드를 지키기 위한 전쟁, 싸움, 혁명의 활동 정도의
컨셉으로 이해하면 될거 같아.

Vol.3 : Exodos
'마지막' 정도로 이해하면 될거 같아.
Vol.1으로 등장하고
Vol.2로 저항을 하고 싸우지만 결국 나는 패하게 되는거야.
현실적으로도 내가 Guerrilla 씨리즈로 어마 어마한 큰 돈을 벌거나 알려질거란 생각한적이 한번도 없어.
트랜드에 벗어난 음악 스타일이기도 하고, 주제들도 대중적이지 못하거든.
분명 이번 앨범은 나의 정신을 내뱉는 중요한 앨범이지만
사회의 문제를 내가 바꾸지는 못할 거라는거 너무 잘알어.
그래서 Vol.3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그런 씨리즈야.
모든게 다 끝나는거지.
우울한 앨범이 될꺼야... 신나지는 않을꺼야..
(걱정마. 그렇다고 정말 내 마지막 앨범이 되지는 않을거야.)

번외로 Guerrilla Muzik 씨리즈로 'Medik'도 생각하고 있어.
정규작은 아니고 EP로. 그럼 Vol. 2.5 혹은 Vol.3.5 정도가 되지 않을까해.
저 큰 그림에 잘 묻을지.. 고민을 해보고 할지 안할지 결정하겠지만..
절대로 씨리즈 안에 억지로 꾸겨 넣을 생각은 없어.
Guerrilla Muzik 씨리즈는 정말 멋지게 마침표를 찍고 싶거든.
그래서 깊게 생각해보고 그림을 그려보고
이거다! 싶으면 씨리즈에 번외로 넣을 고민도 하고 있어.
Guerrilla Muzik씨리즈가 언제 다 끝이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Guerrilla Muzik씨리즈는 내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독립을 한 이후 내는 앨범들이야.
내가 Guerrilla 씨리즈를 내는데 마스터플랜 혹은 부다사운드등의
기획사 또는 음원유통사와의 이해관계는 필요없어.
(마스터플랜과는 계약관계가 끝났고, 부다사운드는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줘.)

바스코가 언제부터 그렇게 언더스러운 아티스트였냐?
1집, 2집이 언더그라운드 스러웠냐?
아니 절대.
언더스럽지도 오버스럽지도 않은 이도 저도 아닌 '괴작'이였어.
인정해.

하지만
Guerrilla Muzik 씨리즈 만큼은 정말 독립적일거고, 가장 언더그라운드 다울꺼야.
(다시 말하지만 언더다운것이 일렉힙합을 한다고 언더답지 않은건 아니란거. 알지?
그렇다고 일렉힙합이 나올거란건 아니고.. ㅋㅋ
사람들이 착각하는 언더음악은 어떠 어떠한것? 이라는 그런 틀에서 벗어 나서 말이야.)
가장 언더그라운드 다운 앨범. Guerrilla Muzik의 씨리즈를 완성할거야!
자, 망해도 내가 망해. 기획사, 유통사와의 이해관계는 없어.
(망하긴 뭘 망해. 1,2집 통틀어서 번돈 보다 3집 하나로 번돈이 더 많어. 걱정하지마 돈은 잘 벌고 있으니까!)

1990년대 후반 가리온형들, Master Plan자체가 언더그라운드였어.
2010년대 초반 Guerrilla Muzik 씨리즈 자체가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는거야!

-Guerrilla Muzik-
-Independent Records-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이유식 만들기

난 쌀을 불리고, 쌀을 곱게 갈고 미음을 만든다음
그안에 쇠고기와 브로콜리를 삶아서 곱게 갈아서 넣기만했을뿐이다.

아내가 이유식 만드는중...
ㅋㅋㅋㅋㅋ

Love you baby.

8월의 마지막

8월...
정말 힘들게 보낸것 같아.
장마와 볼라벤으로 INDP 스튜디오가 물에 잠기고 4집 녹음은 다시 인천에 있는 하늘이형 스튜디오에서 하고 있어. 강의는 근처에 까페에서 진행하고 있고..
비싸고 무거운 장비들을 다 빼느라 힘든것도 있지만 새로 스튜디오 자리를 구하는게 너무 어려워. 절대 지하로는 가고 싶지않아. 더이상... 죽어도....

예전에 2008-2009년 지기펠라즈 활동 당시 지하 스튜디오에서는 곱등이를 한자리에서 3마리나 본적도 있어.
그 습기와 곰팡이.. 벌레들..
3집을 녹음할 당시 열심히 녹음을 하는데 가사공책 위로 지네가 기어가더라고.. 정말 그냥 그자리에서 굳어 버렸어.
그리고 철거할때 녹음실벽에 붙혀논 방음시트지를 벗기는데 벽과 시트지 사이에서 벌레들이 알까놓고 번식하고 있더라... 수십마리가..
아 내가 이런 녀석들이랑 함께 하루에 몇시간씩 동거했다니... 정말... 아...!!
아!!! 다시는 지하에 가고 싶지않아!!

이번엔 무조건 옥탑방으로 구해볼꺼야.
옥탑방이 지하보다는 로망이 있는것 같아.
옥상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야경도 보고..

지금 예상외로 지출이 많아져서 좋은 스튜디오를 잡지는 못할꺼야.
다시 원룸 옥탑방 신세를 져야하겠지만.
아주 잠깐 일꺼야. 다시 바닥 부터 시작하는 기분으로!

설레인다...

GUERRILLA MUZIK.
INDEPENDENT RECORDS.

블로그 시작

예전에 싸이월드, 싸이 클럽을 하다 그것마저 요새는 잘 안하고
Facebook도 만들어 놓고 신나게 친추만 받아주다가 이제는 친추도 잘 안받아주고 있어.
Twitter는 가끔씩하고 있는데 뭔가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
위에 세가지 모두 좀 왠지 모르게 너무 나와 잘 맞지 않는것 같아.

싸이월드는 왠지 사진을 '자주'올려야만 할 것 같고 위에 '투데이'수치가 너무 거슬려..
적게들어오는 날에는 왠지 섭섭하고, 많이 오게 하려고 억지로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느낌? 이젠 그마저도 안하고 앨범이나 공연이 있을때만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있어... 재미없어..

Facebook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나도 나이먹어 가나봐. ㅋㅋㅋ
누가 알려주면 맘먹고 배우면 배우겠지만.. 굳이 왜 그런 노력을 내가 해야하는지 필요성을 못느끼겠고, 인터페이스가 너무 복잡해! 적응못하겠어. 적응하기도 싫어.

Twitter는 너무 짧아. 그냥 그때 그때 내 짧은 생각이나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남들은 어떻게 사나 뭐하고 사나 보는 정도?
물론 싸이월드나 Facebook보단 인터페이스도 심플하고 좋지만,
진짜 나를 알리기엔 부족한거 같아.

우리 독립음반사 'Independent Records' 홈페이지를 만들었다가 폐쇄한 이유도 그거야.
블로그 형식으로 만들었었는데, 결국은 너무 공적인 싸이트라서 왠지 개인의 생각들을 올리면 가벼워보이는 느낌이 들더라고.
다시 회사홈페이지를 만들게 된다면 100% 공적인 싸이트로 만들까 생각중이야.
의류나 CD판매하고 작업물들을 올리는..

근데 최근 JM에 노창이라는 친구가 자신의 블로그(http://rawkidd.tumblr.com)에 자신의 앨범 작업기를 올리는것을 봤는데 좋아보이더라고..
뭔가 긴글이 적혀있어도 읽고 싶더라고.
뭔가 가볍지 않은 느낌?

그래서 나도 한번 블로그란것에 도전해 보려고
새벽에 혼자 궁상떨고 앉아 있다. ㅋㅋㅋ

내 3집 작업기도 올려보고 싶어.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가사를 썼는지.
작업할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지금 4집은 어떻게 되가는지.

요즘은 정말 할말이 많어..

GUERRILLA MUZIK.
INDEPENDENT RECORDS.